나는 힘듦을 내색하지 않는다.
결혼 전의 우리 가족 구성원중에는 장애인이 한 명 있었다. 집안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은
정말 너무너무 힘든 일인데 이게 없는 사람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내 동생은 지체 장애자다. 장애에도 레벨이 있는데. 내 동생은 1급이다.
장애 1급부터 2급 3급 있는데. 1급이 가장 나쁜 상태인 것이다.
동생은 뇌(정신) 발달이 3살쯤에서 멈춘 상태이고 현제 내 동생의 나이는 39세이다.
현실적으로 얘기를 하자면 동생은 혼자 화장실을 간 후에 스스로 닦지를 못한다.
이 거 하나 만으로도 일단 힘이 들게 된다. 그러면 안 되지만 부모님께서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쟤가 나보다 먼저 가야 할텐데"
나는 저 말을 어렸을 적에 듣고 화를 엄청나게 내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마시라고 대들었었다.
부모님이 이미 동생이 아니고도 힘들게 살 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채무가 생겨서 말이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살아온 나는 부모님께 기대지 못하고 살아왔다. 고등학교 초반에는 왕따로 인해 아주 잠깐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까지 부모님께 삶에 무게를 지워드리기 싫어서 그냥 친구들과 방황을 많이 했던 거 같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말이다.
중학교 2학년때 이미 흡연을 시작했고, 고등학생 때는 나이트클럽을 제 집처럼 들락날락했다. 공부를 워낙에 안 하고 방황을 해서 그 당시 공고로 진학을 했다. 공부에는 정말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 그냥 학창 시절 내내 놀았다..
그렇다고 큰 사고를 치고 다니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내 안의 어린아이는 어린 티를 내면 안 되었기에 그 에너지를 밖으로 발산했던 거 같다. 그렇게 나는 유년기 청소년기에 누구에게든 항상 기쁘고 행복한 척을 하고 살았다. 나에게 밖으로 보여줬던 표현은 대부분 난 아무렇지 않아 였다. 그 외의 표현은 거의 안 하고 살았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어떤 피해의식이라던 피해자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다.
세상에 나오고 사회생활을 하며 치열하고 또 치열하게 살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결혼까지 하게 된 지금에서는 그저 동생과 가족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지금 내 인생 앞가림도 힘든데 그저 안쓰러움 그리고 그 안쓰러움을 잊게 해주는 내 사랑 간에 사이에서 또 방황 중인 불혹의 아저씨가 되었고
살아보니 부모님의 저 한마디 "쟤가 나보다 먼저 가야 할텐데" 에 반응했던 그때의 나는 정말 어렸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나라도 그런 말을 하겠다고 생각이 드는게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나서 100% 이상 이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또 속으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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