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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 및 서평/서평

[book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by 코딩하는 근근 202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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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4. 거듭 확인 하자면 민중은 세금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이런 교회의 성직자 위계제도는 관료제의 기원이므로, 이것은 바로 정치와 관료제의 부패  자체였던 것입니다. 이른바 면죄부는 수 많은 부패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p91. 이는 법학과 신학의 분리라는, 유럽에서 출현한 현상이 세계로 수출 되었기 때문인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만, 중세 이래 유럽의 법과 제도는 그리스도교에 준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잊히고지금은 유럽의 법제사가 중에서도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학자 루터의 혁명은 당연히 법의 혁명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아니라 절대적인 '혁명'  자체 였습니다. 이런 사실이 잘보이지 않게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현행법률도 유럽의 법을 계승한 것이므로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p105. 문학이야 말로 혁명의 근원이다

  혁명은 문학전인 것이 아닙니다. 다릅니다. 결코 다릅니다. 문학이야 말로 혁명의 본질입니다. 혁명은 문학으로 부터만일어나고 문학을 잃어버린 순간 혁명은 죽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문학을 편하하고 문학부를 대학에서 추방하려 할까요?  문학자 스스로가 문학을 이렇게 까지 업신여길까요? 그것은 바로 문학이 혁명의 잠재력을 아직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그것에 겁을 먹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이토록 정보의 틈새에서 괴로워 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자신을 통치하는 텍스트라는 것이 무미건조한 정보이자 서류인 어느 시공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P114 물론 전쟁기계라는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투쟁력 없이는 어떤 번혁도 불가능 합니다 그런 것으로 제기된 것이니까요. 그러나 ' 쪽은 좋고  쪽은 나빠'라는 단순한 사고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런 유치한 사고에 굴복한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그들의 자작자연에 동조할  없습니다. 그런 냉철함을 가져야 죽음을 무릅쓰고 읽고 쓰는 일이 저항과 혁명을 불러오는  징조라는 것이 분명해 집니다. 이는 이야기를 시작할때부터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p139. (무함마드) 읽으라는 말을 듣고 읽었고, 쓰라는 말을 듣고 썼으며, 그리고 시를 읊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몇번이나 반복합니다 문학이야 말로 혁명의 힘이고 혁명은 문학으로 부터만 일어납니다. 읽고 쓰고 노래하는 , 혁명은 거기에서만 일어납니다.

 

p157. 그들에게 바깥은 없습니다. 자신의 바깥은 없고 모든 것은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은 읽지 않더라도 성전에 쓰여 있다는 것이 되고, 자신의 죽음은 저절로 세계의 죽음과 겹치게 됩니다. 완전 병들어 있습니다. 이리하여 "읽을수 없는 것을 읽는다" 고난과는 반대인 "어차피 읽히는, 읽히는  밖에 읽지 않는, 읽지 않아도 이미 안다며 얕보고 읽지 않"는 안일함이 죽음을 한없는 죽음을 낳는 것 입니다.

 

p205. 우리는  인간의 행위에 의해 "우리의 광기에서 살아남는 " 찾아온 것입니다. 언제든지, 무슨일이 있었든지말이지요.

 

p220.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결정적으로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지금 말한 세사람이'계보학자'를 자칭하는 것은  인지 좀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p268. 우리는 우주의 거대한 생성의 일부이고 ,  의미인 것입니다.  방대한 우주의 생성안에서 이리하여 우리가 말을 얻을  있고 그리고 그것을 자아내가는 것은 절대무의미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미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자체가 의미 입니다. 

 

[읽은후]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얼까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며 독서를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이책을 추천해주고 싶지만독서를 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읽으려면 난해하다 느껴질  있는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책에도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이책은 21세기의 고전이라 명명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발췌).책을 읽는 행위가 위대한 이유는  자체가 혁명이고 또한 혁명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 무함마드, 니체, 도스토옙스키, 프로이트 , 라캉 , 버지니아 울프 등이 그랬다. 사사키는 '책읽기의 혁명성' 납득시키기 위해 마르틴루터를 소환했다. 루터는 세계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을 , 세계의 근거이자 준거인 텍스트, 성서를 읽었다. 성서를 읽으면 읽을 수록 세계가 미쳐 돌아가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었고, 게다가그 질서는 완전히 썩어있었다. 준거가 되는 성서에는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대주교나 주교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고, 그들의 명령이나 질서를 따라야만 한다는 근거도 찾을  없었기 때문이다. [홍순철 북칼럼니스트]

 

 

작가는 갑자기 일본 지성계에 등장하더니  '일본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게  사사키아타루 작가의 대표작인 '혁명으로서의 책읽기'를 주제로  <잘라라, 기도하는  손을>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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